혐오에 대한 솔직함
2024.11.13
윌리엄 해즐릿,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를 읽고
윌리엄 해즐릿,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를 읽고
고통보다 즐거움을 유지하는 데 더 큰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헛되이 약간의 시간을 낭비한 후 사랑하던 것에서 미워하는 것으로 주의를 돌린다!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며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 고통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며, 이 맛은 쉽게 물리지 않는다. 사랑은 조금만 탐닉해도 무관심이나 역겨움으로 변한다. 그러나 혐오만은 죽지 않는다.
긍정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쓰여졌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쉽게 채워지곤 한다. 이 책은 정확히 불행과 혐오에 대해 마주한다. 실컷 혐오에 대해 읽다 보니, 오히려 더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갈무리
- 우리는 의지를 조절하여 악의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게 그것을 박애의 정신 안에 가두어 놓는 법을 배운다. 그런 다음 악의에 대한 감상과 상상마저 온화한 상태로 억누를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 이 걸린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즉 야만적인 폭력 은 포기해도 적대감의 본질 또는 그 원칙과는 결별하지 못 한다.
-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 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 이다. 우리의 운수에 생기는 흰 줄은 그 주위가 어두울수록 더 밝아진다 (또는 잘 드러난다). 무지개의 모양은 배경에 구름이 있어야 선명하다. 그 감정은 교만일까? 시기일까? 대비의 효력일까? 약점일까, 악의일까? 인간은 악을 갈망 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해도 운 좋게 생각되는 비뚤 어진 쾌감을 얻는다. 나쁜 짓은 변함없는 만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 한다. 고통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며, 이 맛은 물리지 않는 다. 사랑은 조금만 탐닉해도 무관심이나 역겨움으로 변한 다. 혐오만이 죽지 않는다.
- 그런데도 우리의 위장에는 항상 과잉 의 담즙이 차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유령과 마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 를 얼마나 싫어했던가! 사람들은 죽을 듯이 무서움을 타고 싶어서 유령이 필요했고, 박해하기를 좋아해서 마녀가 필 요했다.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흥분의 질보다는 양이다. 우 리는 무관심하고 권태로운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 세상은 변한다. 예전의 감정을 되살릴 수 없다. 옛 친구 들을 피하며, 그들과 있으면 불편하다. 그들은 우리의 결함 을 떠올리게 하고, 일부러 다정한 체하는 수고를 하게 한 다. 그래 봤자 우리 자신만 쑥스러워지고 이전의 동료들을 속이지도 못한다. 옛 우정은 차게 식은 채 되풀이해서 식탁 에 올려지는 맛없고 불쾌한 음식 같다. 그런 음식은 위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무 자주 만나 스스럼없으면 싫증 이 나서 서로를 하찮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한동안 뜸하다 만나면 서로 달라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누구는 너무 영리하고 또 누구는 너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