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있다면, 우파에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물질이 정신을 결정한다고 주장 했다. 그들은 생산기술의 발전이 자본주의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막스베버는 정신적인 프로테스탄트 종교 윤리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임을 주장하며,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주장을 반박했다. 자본주의를 이끈 것이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키보드 배틀이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 양상에 특이점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발달한 곳에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했다는 것이다. 개신교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활발하게 퍼졌던 영국,네덜란드,미국은 자본주의가 활발 했다. 반대로 가톨릭이 우세한 스페인,이탈리아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했다. 책의 주요 관심사는 이러한 특이점이 인과 관계가 있는지, 즉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어냈는지 밝히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가 저항했던 것은 부패하여 세속적으로 변한 종교, 가톨릭이었다. 따라서 개신교는 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다른 엄격한 입장이 필요 했다. 예를들어 자주 들었던 루터나, 칼뱅 등이 이에 속한다. 하나의 예로 칼뱅 교리를 살펴보자. 칼뱅에서는 용서가 없다. 죄를 저지르고 참회한다고 봐주는 것은 업삳.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지을 사람이었다라고, 그것이 신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해버린다. 용서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단 한번도 잘못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칼뱅주의의 예정설이라 한다. 이러한 엄격함은 모두에게 규율로서 작동하기 충분했다. 면죄부라는 인간적 부패가 만연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칼뱅주의의 예정설의 흥행이 놀랄일은 아니다. 이렇게 루터부터 칼뱅 다양한 프로테스탄트 정신들이 발전했다.
책에서 말하는 '자본' 이란 투자를 목적으로 생산에 투입되는 돈, 재화, 노동 등을 말한다. 반대 개념으로는 '부'가 있는데, 금고나 땅 속에 있는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되는 것을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생산에 따른 이윤을 다시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하는 활동하는 사람을 자본가라 부른다. 반대로 수입을 연회, 전쟁 등에 쓰는 중세 귀족은 '자본가'는 아니다.
자본주의란 생산을 극대화 하기위해 합리적으로 자본을 이용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의 욕망도 억제해야한다는 것이다. 축적된 부를 생산에 투자하지 않고, 비생산적으로 소비를 하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은 자본주의의 방향에 어긋난다. 그러니까 번 돈으로 공장을 지어 무언가 생산하면 바람직하지만, 포르쉐를 사서 타고 다니면 부적절한 것이다. 절제는 자본을 더욱 증식시키기 위한 자본주의에 미덕이었다. 이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매우 조화를 이루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개인에게 근면함을 강요했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발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념을 뒷받침 해주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우연히 만들어 진 것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저 역사의 정반합일 수도 있겠다. 더 많은 부와 계급을 쟁취하기 위한, 기존의 가톨릭을 부셔버릴 무언가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