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을, 영원한 이야기

2023.12.31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를 읽고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학교'라고 부르는가" 따위의 생각들 말이다. 빨간 벽돌의 건물을 학교라 부르기도 모하고, 가르치는 공간이라고 하기엔 학원도 있고 말이다.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물고기들에게 이름을 붙여 의미를 찾고 분류한다. 어느 날 그는 분류했던 모든 표본을 지진으로 잃게 된다. 물고기의 이름을 지어주며 창조한 세상이 한순간 무너진다. 절망하지 않고 덤덤히 나아가는 그의 초월적 행동, 의지는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자체다.

"파괴되지 않는 것"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 나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경이로운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물고기라는 범주, 그가 역경을 딛고 만들고자 하는 범주,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존재하지 않을, 영원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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