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체성은 만들 수 있다

2024.08.18
그레고리 번스, 『나라는 착각』을 읽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까. 사람은 직접 보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로 받아드린다.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뇌에 저장하지 못한다. 압축하여 저장하고, 그것을 추측, 복원하여 정보를 편집하여 가공하여 다룬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 게다가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완전한 편집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불완전하게 편집하며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창조한다.

결국, 내가 믿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나를 형성하는 것이다. 단일한 자아 같은 것은 없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다른사람이 생각하는 나. 모든 것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그렇다면 이 사실을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 좋은 음식이 건강한 몸을 만들듯, 내가 듣고, 보고, 이야기하는 서사가 나를 만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와 연결지어 생각해보자. 생각과 그것을 바꾸는 인식조차도 인간이 발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명할 수 있다.


갈무리

  • 연속적이고 일관된 존재로서의 자아는 허구이다. 더 직설적으 로 말하자면 자아는 망상이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아의 모형은 대체로 비슷하며 외부에서 우리 의 뇌에 들어온 이야기로 채워진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냐 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맞다. 우리의 개인적인 서사가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 261
  • 정리하자면, 당신이 소비하는 이야기, 특히 당신이 읽는 이야 기는 마음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 다. 당신이 소비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일부가 되고, 감각 중추의 반복적인 자극은 근육 기억과 동등한 서사를 형성한다. 그리고 당신의 뇌는 이러한 서사의 원형에 익숙해진다. 그것들이 허구라 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 기억들은 삶의 사건들을 해석하기 위해 동원되는 뇌의 모형에 영향을 준다.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소비할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영웅의 이야기는 당신도 영웅의 여정에 있다는 느낌을 강화할 것 이다. 하지만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처럼, 음모의 그림자가 깃든 이야기를 꾸준히 먹으면 당신의 개인적인 서사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어 의심과 편집증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할 수 있다. - 278 p
  • 드디어 여정의 끝에 다다랐다.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 버전 의 자신이 있고, 그들이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설득했기를 바란다. 이 문장의 힘을 깨닫게 되면,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 앞에 열린다. 당신이 말하는 서사가 곧 당신이다. 당신이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한, 당신은 줄거리를 통 제할 수 있다. 당신은 부지런해야 한다. 오래된 서사를 지울 수는 없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과 더 밀접하게 일치하는 다른 서사를 소비함으로써 그것들을 대체할 수 있다.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334 p
  • 셰익스피어의 연극 〈탬페스트The Tempest〉의 마지막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프로스페로는 딸과 함께 12년 동안 섬에 갇혀 있었다. 그는 자신과 딸을 구해준 알론소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 아왔는지 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알론소는 대답한다."당신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게 내 귀에 이상하게 들려야만 해요."당신의 삶을 살아가라. 이상한 이야기를 말하라. - 33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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