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환상

2019.09.17
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19년 여름 충동적으로 유럽으로 떠났다. 준비 없이 그냥 갔다. 이유 없는 여행을 가는 쿨한 느낌을 추구했다. 하지만 쿨한척은 쉽지 않았다. 여행 중에도 여행의 이유를 찾았다. 나는 이유 없는 큰 지출은 못 견뎠다. 여유롭기에는 아직 나약했달까.

파리 여행자는 환상과 현실의 괴리로 현기증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도 아름다운 에펠탑의 환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뭔가 멋져야할 것 같은데 별로라서 당황스러웠다.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대게 그랬다.

귀국 길이 조금 허무했다. 여행의 이유를 찾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김영하는 "여행은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버리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여행의 이유들도 화려함보다는 낯선 고통의 경험에 가까웠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한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