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과 열정
랜디 코미사, 『승려와 수수께끼』을 읽고
해야만 하는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나중에 하라는 식의 ‘미뤄둔 인생 설계’에 의문을 던진다. 의지는 책임감이지만 열정은 저항할 수 없는 끌림이다.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의지인지 열정인지 고민했다.
목표가 크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달걀을 1m 높이에서 깨뜨리지 않고 떨어뜨리는 방법은 1.5m에서 놓는 것이다. 피상적인 걸림돌에 집착하면 길을 잃는다.
리더와 관리자는 다르다. 똑똑한 관리자는 지능과 시간으로 살 수 있지만 리더는 실행과 용기, 존중으로 성장한다. 나는 리더에서 관리자로 이동했다. 질문보다 답을 했고 돕기보다 이끌었다. 조직의 복잡도가 커지면 관리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책 속 승려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야 한다. 목적지에 끝은 없다. 새로운 목적지가 나온다. 여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10년의 일하는 여정을 돌아보았다. 비교하며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소중하고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에필로그 — 길
결론부터 말하면 여행은 그 자체가 주어지는 보상과 같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그게 끝일 뿐이다. 만약 계란을 1미터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깨뜨리지 않으려면, 높이를 1.5미터로 높이면 된다. 거의 25년 전, 스코틀랜드의 인적이 끊긴 길에 서 있을 때 깨닫게 된 것이다.
축축하고 음산한 날이었다. 차가운 4월의 비는 잿빛 하늘을 갈랐다. 언덕을 감돌고 나온 바람이 내 겨울 코트 안으로 세차게 밀려 들어왔다. 주위는 왠지 으스스했고 양들이나 좋아할 만한 험준한 바위투성이만 가득했다.
나는 런던에서부터 차를 얻어 타며, 친구와 함께 일주일째 여행 중이었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는 우리를 글래스고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동쪽으로 애버딘, 다시 남쪽으로 인버네스와 네스 호까지 가는 길에는 친절한 운전자는커녕, 지나가는 자동차마저 한 대 없을 때도 있었다. 애버딘 근처에서 드디어 토실토실한 수다쟁이 아가씨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사귀자는 시도라도 할 태세였다. 우리는 열심히 장단을 맞췄다. 그렇다고 더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본인의 농장에 가서 뭘 좀 먹고 마시지 않겠냐며 우리를 초대하는 정도였다. 마시자는 것은 술이었고 먹자는 것은 운이 없게도 해기스(haggis, 양·송아지의 내장을 오트밀 따위와 섞어 그 위장에 넣어서 삶은 요리)였다. (나는 영국에서 채소를 찾아 헤매는 채식주의자였다.)
흠. 친절한 아가씨에 몇 가지 음식과 가득한 술! 춥고 축축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시골집이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여행 계획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여정에도 없던 포트 윌리엄, 네스 호를 보고 급히 런던으로 돌아가서 파리로 넘어가야 했다.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꼭 봐야 할 도시와 장소를 동그라미 치고 몇 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시작한 여행이었다. 작은 예산으로 네다섯 달 만에 유럽의 모든 유적지와 박물관을 둘러보겠다는 계획하에 짐을 싼, 1970년대 버전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 영국 귀족 자제의 유럽 만유 여행)였다. 부잣집 친구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유럽 일주를 끝마친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그들처럼 해 봐야지 싶어 출발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옆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를 억지로 차에서 끌어내렸다. 차가 멀어지면서 그녀가 운전하는 차의 거울 속으로 술과 음식, 따뜻한 시골집의 초대도 사라져 갔다. 길가에서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잘됐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 도로에 두 사람만 달랑 있었다. 양쪽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차도, 사람도, 집도. 단지 외롭고 지저분한 양 몇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비를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는 현재 우리의 처지를 놓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 시련이 곧 끝날 것이라 믿으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나마 어쩌다 지나가는 차마저 몇 번 저 지나쳐 버리자 절망감은 깊어만 갔고 이곳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임을 알아차렸다. 양 방향으로 수 마일까지도 보이는 위치였지만, 아무도 우리를 위해 와 주지 않았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길을 벗어나 목초지로 들어간 후 돌멩이를 주워모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씩 길가에 나와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목초지 한가운데는 좁은 골짜기가 두 갈래로 나 있었다. 그 골짜기를 따라 우리는 둑을 쌓기 시작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 했다. 나는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골짜기 속으로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가끔 돌멩이가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소리가 들렸고, 가파른 골짜기 옆을 맞고 튕겨나가기도 했다. 1초, 2초, 3초. 나는 초를 세며 고등학교 때 배운 물리학 실력을 발휘해 골짜기의 깊이를 계산해 봤지만, 매번 돌을 던질 때마다 내 측정이 달랐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쥔 채로 풀밭에 앉았다. 어떻게 하면 공들여 준비한 여정을 스케줄대로 원상 복귀하여 수렁에서 건져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면서 궁리를 하는데 갑자기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어깨 위로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루 종일 우리를 짓누르던 어둠의 장막이 걷히면서 눈부신 빛줄기와 무지개가 나타났다. 희미한 안개 너머로 내 눈에 항상 비쳐 왔던 그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 골짜기를 따라 신나게 달리는 물살, 앞뒤로 구불구불 펼쳐진 아스팔트길, 군데군데서 양들이 천천히 풀을 뜯고 있는 에메랄드 빛 언덕, 그리고 유럽의 스코틀랜드 어딘가 이름 모를 땅에 외롭고 고요한 풀밭 위에 앉아 있는 여행객인 나. 햇볕이 눅눅함을 태워 없애 가는 동안, 나는 이게 바로 여행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나를 묶고 있던 습관과 일상에서 네 다섯 달 가량이나 벗어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와 걸어간 땅을 따라가는 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내 여행이었고, 내 인생이었으며 나만의 여정이 필요했다. 나는 스케줄 따위는 던져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이런 결정이 어디로 나를 이끄는지 보기로 했다.
한 시간쯤 뒤에 어느 노부부의 차를 타고 네스 호에 도착했다. 숙소를 잡고, 술집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후 몇몇 장소를 둘러보면서 우리의 시간을 마음껏 보냈다. 마침내 우리는 런던으로 돌아갔고, 소호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파리에 있는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일주일 내내 빵과 치즈를 먹고 와인을 병째로 마시며,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을 왔다 갔다 하며 보냈던 시간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그다음에는 기차를 타고 스페인으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그런 식으로 계속하여 마드리드, 리스본, 모로코, 바르셀로나, 밀라노, 베니스, 볼로냐, 플로렌스, 로마, 아테네, 산토리니, 크레타, 그리고 그 중간중간을 계속해서 여행했다. 멈추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들이 나를 기다렸다. 누드 여행객들로 가득한 한적한 해변이 있다는 정보를 코르푸 섬의 어느 술집에서 만난 여행가에게 듣고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에는 굳게 빗장이 걸려 있었지만, 한 스위스 소녀가 로도스 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다른 경로를 알려 주었다.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터키의 마르마리스였다. 스위스 소녀는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동쪽으로 간다고 했는데 거기까지 함께 가도 좋다고 했다. 7월 말이 되어 가던 그때, 여정대로라면 그때쯤 삶의 다른 부분을 시작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의 캠브리지로 출발해야만 했다. 나는 스코틀랜드의 그 길을 떠올렸다. 선택은 나의 것이다. 내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쪽으로 가든, 저쪽으로 가든 후회할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바로 이스탄불로 말이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거기서 암스테르담까지 갈 수 있고 뉴욕행 비행기 티켓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을 가 본 적이 없다. 내 여정을 연장하지 않을 그 이상의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