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

여름

김애란,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나에게는 겨울은 따뜻하다. 차라리 더운 여름이 쓸쓸하다. 여름이 가장 길어서인가? 내가 여름에 태어나서인가? 어찌되었건 나는 여름이 오고 갈 때 과거를 되새김질한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해외 여행이 가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 스스로를 다르게 연기해볼 무대가 깔린 듯한 느낌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나에 대해 솔직하고,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에 대해 망설여보는 시간 같다. 엇갈리고 미묘한 인연들.

건너편

노량진에서 만난 두 연인. 반듣하게 수건을 접는 여자와, 돌돌 수건을 말고 싶은 남자. 시험에 합격해 사회인이 된 여자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래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남자. 남자는 크리스마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먹고, 다음날 돌아와 노량진에서 여자와 함께 비싼 회 먹으러 나선다.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하고 받은 50만원, 30만원 어치의 횟감. 노량진에서 회를 먹는 크리스마스날. 노량진에서 만난 두 연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노찬성과 에반

자기를 따르던 강아지의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의 유혹은 대단했다. 모아둔 돈으로 병원에 차가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망설임과 유혹이 있던 어린 아이의 책임지는 이야기. 용서가 뭔지, 없던 일로 하자는 건가?

가리는 손

자신이 전전긍긍하던 아이가 생각보다는 순진하지 않다. 세상에 어떤 나쁜 사람도 누군가의 아이일테니까. 어린 아이들이 지나가는 폐지 줍는 노인과 시비가 붙었다. 아이들은 노인을 다치게 했고, 노인은 죽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 재이는 이 모습을 목격한다. 재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혹은 억울하게 욕을 먹을까 걱정이다. 그러다 블랙박스의 이 사건이 모두 기록되었고, 재이의 얼굴까지 인터넷에 떠돈다. 어머니는 영상을 면밀히 보게 되고, 재이가 노인이 괴롭힘 당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재이의 가린 손 뒤에는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입동

점점 좁혀오는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벽지를 바르는 날의 이야기. 결혼 후 난임 치료 끝에 아이를 갖는다. 전세를 전전하며 지내다 끝내 집을 경매로 싸게 나온 집을 얻었다. 그 남루한 집에서 안간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부엌의 벽지. 유행이 타지 않게 올리브색으로 벽을 칠했다. 이렇듯 점차 자리를 잡아갈 무렵 유치원 차에 아들이 죽는다. 무기력함 속에서 그 벽지마저도 매실액으로 더럽혀 진다. 새롭게 마트에서 벽지 사다 붙이다 벽에서 죽은 아이의 낙서를 발견한다. 삶이란게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일까. 고단하지만 버텨야 하는 삶에 대해. 봄에 이사온 이 집에서,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날 까지. 이 부부는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을 배워간다.

풍경의 쓸모

사진으로 찍은 행복한 순간은 바로 사라진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게 된다. 풍경의 멋짐은 바라볼 때 한 순간이다. 그리고 멋진 풍경이 아닌, 지나가는 풍경의 일부가 되는 우리의 삶. 그는 교수가 되지 못해 풍경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궁핍한 풍경이 되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의 환갑 여행을 보내드린다. 외도로 집을 나간 아버지가 돈을 빌리러 오기도 한다.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학과장 곽교수의 음주운전을 대신 대가를 치른다. 곧이어 그 대학 교수 임용에 지원한다. 그 과정에서 곽교수가 심사 과정에서 강하게 반대를 해 임용되지 못한다. 제법 능숙한 어른이 된것 같지만, 전형적인 어려움과 고난이 닥친다. 주인공은 꽤나 멋있게 만연필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고단한 현실에 굴러다니는 모나미를 주워 서명을 하는 사람이 된다.

갈무리

  • ‘반의반’ 또 ‘반의반의반’ 크기로 접힌 종이 위에 외발로 선 채 가족을 안고 부들부들 떠는. 그렇지만 결국 살았다고 카메라를 보며 웃는. 대학 동기들은 내게 벌써 집 장만을 했냐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봤자 하우스 푸어”라고 겸연쩍게 변명했다. 한 녀석은 “나는 그냥 푸어인데 그래도 너는 하우스 푸어니 얼마나 좋냐”고 받아쳤다.
  • 아내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세 번 응시해 세 번 떨어졌고, 공무원이 되는 대신 노량진 공무원 입시학원에서 사무를 봤다. 결혼 후 난임 치료를 받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영우를 가졌고,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샀다. 모두 지난 십 년간 정신없이 벌어진 일들이었다.
  •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부엌 벽면이었다. 남루하고 어지러운 세간 사이로 유일하게 ‘아름다움’을 주장해, 그렇지만 안간힘을 쓰듯 화사해 눈에 띄었다.
  •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그러니까 거기 사 인용 식탁에서. 식탁과 맞붙은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아래서.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은 바로 거기 튄 거였다. 아내와 나는 복분자액이 터진 날의 일을 따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음날 바로 본가로 내려갔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려 애썼다.
  • 내가 거기 계좌번호를 적는 순간 이상하게 어린이집 원장을 용서하는 결과를 낳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부엌 벽면에 밴 물은 웬만해서 잘 빠지지 않았다. 젖은 행주로 닦고, 매직 블록으로 문지르고, 화장솜에 아세톤을 묻혀 조심스레 두드려도 소용없었다. 행주질을 여러 번 한 곳은 비교적 옅어졌지만 얼룩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흔적을 지우려 하면 할수록 우둘투둘 종이만 더 해졌다. 어찌됐든 도배를 새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 —우리 신랑 키 크네. 오랜만에 보는 미소였다. 하지만 조금 쓸쓸해 보이는 웃음이기도 했다. 도배지를 벽면에 반쯤 붙이자 아내가 재빨리 뒤로 빠지며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 빛에 관해서라면 하나 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모닥불 쬐듯 티브이 가까이 앉아 전자파를 쐬고 있는 모습이다.
  •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 아버지는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거다. 총기 흐려진 눈, 주관과 편견이 쌓인 입매, 경험에 의지하는 동시에 체험에 갇힌 인상을 보았을 거다.
  • —여기 김교수가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말이야. 곽교수가 자네를 좀 강하게 반대했던 모양이야. 나한테는 그냥 혼자 알고 있으라 하더라고.
  • 그러곤 조서에 서명하기 전, 만년필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책상 위에 있던 모나미 볼펜으로 내 이름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