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

호수를 빙 둘러 헤엄치는 일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읽고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언어는 생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언어는 사람에게 또 다른 인격이나 인생을 선물한다. 주인공은 작가다. 그녀는 글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존재한다. 그녀는 영어로 쓴 작품을 통해 꽤나 명성을 얻었다. 어느날 돌연 이탈리아어에 매료된다. 이탈리아에 살지 않았고 이탈리아 친구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며, 이탈리어아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막막한 이탈리아어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반대로 영어가 낯설어진다. 이탈이아어로 글을 먼저 쓰고, 영어로 번역하는 데 매우 이질감을 느낀다. 사실 그녀가 언어를 낯설게 만드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뱅골어를 모국어로 쓰는 가족에서 태어나 영어문화권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그녀가 영어만 이해할 것이라 짐작하고, 반대로 미국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쓸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그녀는 영어나 벵골어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이탈리아어 만큼은 조금 달랐다. 애정이 있었다. 미국에 돌아갈 때에는 매일 이탈리아어로만 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아까웠다.

벵골어와 영어에서 방황하는 그녀가 돌연 이탈리아어를 붙잡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불안한 안정감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던져진 환경에서 노력으로 얻어낸 안정감은 미묘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다. 호수를 빙 둘러 헤엄치는 일. 그러니까 깊은 물이 무서워 호수를 가로지르지 못했던 무수한 날들에 지루해질 때, 그녀는 호수를 가로질러 헤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