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전화

2025.04.06
한병철, 『서사의 위기』를 읽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경험과 생각은 무한하지 않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반복한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면 즐겁다. 후련한 감정까지 든다. 특히 듣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즐겁다. 마치 자신이 말하면서 즐거울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듣기 품앗이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일종의 쌍방향 품앗이이며, 의식인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휩쓸어가는 것을 봤다. 나도 한껏 휩쓸렸다. 그 파도 안에서 나도 파도를 만들었다.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관계를 염탐했고,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중고등학교 시절, 하루 종일 싸이월드를 하기도 했다. 하고 나면 현자타임이 왔다. 옆반의 얼굴만 아는 아이들의 싸이월드를 한껏 염탐했다. 실제로 만나면 어색함에 대화도 똑바로 못 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발전한 나의 사회 관계망 서사는 이러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봤는지 더 많은 정보가 넘친다. 형식만 스토리일 뿐, 거기에는 서사가 없다. 사회 관계망 속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어머니들이 밤마다 전화를 붙잡고 수다를 떨었던 그 느낌, 그 느낌이 없다. 직접 나누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맛이다.

작년 나는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니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한국에 있는 것인지, 회사를 잘 다니는 것인지 등 소식이 전부 끊겼다. 생각보다 안부가 인스타그램에 의해 공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를 견디지 못해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전화는 어색하기도, 즐겁기도 했다. 나도 이제 어릴 적 전화기를 붙잡고 떠들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사회 관계망을 하며 텁텁해했는지, 정보와 서사가 무엇이 다른지, 전화가 어색하지만 좋았던 이유들이 묘하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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