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태도

2025.05.08
에리히 프롬 , 『사랑의 기술』을 읽고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받는 능력이나 올바른 대상을 찾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지적한다. 그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로 보며, 그 기술은 이론적 이해와 실천적 훈련을 통해 습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을 상품화하고, 사랑마저 교환 가치로 환원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즉, ‘괜찮은 상품인 내가, 괜찮은 상품인 너를 만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며, 이는 사랑을 조건적이고 계산적인 거래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프롬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주는 능력이며, 타인을 향한 성숙한 태도이다. 그는 사랑이 특정한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와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은 단지 특정한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배려, 책임, 존경, 이해를 꼽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능동적인 실천을 통해 나타나며, 사랑은 결국 성숙하고 생산적인 삶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을 “사랑받는 능력이나 올바른 대상을 찾는 것”으로 여긴다는 프롬의 비판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주장은 마음에 와닿는다. 진정한 사랑에는 내면의 성숙함,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작년에는 유난히 많은 소개팅을 해봤다. '대상을 찾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싶었다. 책을 읽고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인은 스스로를 상품처럼 여긴다. 우리는 점점 더 소외되고, 규격화되어 간다. 하루 8시간, 정해진 일과를 반복한다. 스스로를 훈련하거나 돌아볼 여유도 없다. 규격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게으름을 조금 피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기에 사랑조차 어려워진 존재들이다. 슬픈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사랑을 어떻게 찾을까?' 라는 제목에 이끌릴 것 같다. 결국 프롬은 스스로를 돌이켜보라는 것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한다. 앞으로는 운동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을 더더 가져야하지 않을까.


갈무리

  •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 기술 숙달하는데 필수인 요인이 있다.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 사랑이 성숙하고 생산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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