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세모 네모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을 읽고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모르는 것, 아는 것, 이해하는 것 이 3가지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하는 것은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같은 지식이라도 경험이 아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바꿔주기 마련이다.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 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동그라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모, 네모를 알아야 한다. 한 가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것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이다. 한식만 먹고살면 한식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알기 어렵다. 언젠가 모든 것은 만날 테니, 들판을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갈무리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 세계로 나갈 것을 권유하는 어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에도 자기 기반이 남아 있는 다급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라는 말은 어쩌면 그들을 더 위축시키는 하나의 압박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충동적으로 내던질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가볍지 않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통념과는 반대로 흔한 것은 이들이다. 한 가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다. 이들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이유는 이들이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나약해서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부족하고 세계의 복잡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들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 분명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이것에 집중하겠다는 단순한 전략을 세운다.
그 어떤 질문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음을.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한다. ‘부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존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음을. 부재에 대한 사유는 현재의 나를 무기력하게 잠식하는 동시에,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고전들을 읽어보라. 당신이 오랜 시간 책을 접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가방끈이 짧다며 스스로를 폄하하는 사람일지라도, 혹은 먹고사는 일 외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해온 사람일지라도.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 속에서 충분한 체험을 만들어왔다면 그 고전은 놀랍게도 쉽게 읽힐 것이다. 만약 용기를 내어 빼어든 몇 권의 고전이 생각보다 읽히지 않고 어렵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 책이 대단한 무엇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책이 당신의 체험보다 앞서 도착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시간이 쓸쓸할까 걱정될 뿐이라고. 그런데 문득,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이리저리 들춰보다 말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날이 저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지 모른다. 노을이 지는 것도, 움켜쥐었던 강물이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도, 정성과 집착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 바람에 야위어가는 것도,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과정일지 모른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이해하게 될, 그 어떤 약속에 대해서 나는 기대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그가 가진 외적 조건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갖는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자는 그의 내면도 훌륭할 것이라 믿고, 험한 일을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보잘것없을 것이라 믿으며, 나에게 고개 숙이는 자는 그의 내면도 나약할 것이라 믿고, 내가 고개 숙여야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강인할 것이라 믿는다. 그가 입은 옷, 그의 학벌, 직업, 지위, 경제력. 그 외에 우리가 타자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눈은 대상의 물리적 표면에만 머물고, 각자가 가진 내면세계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나쁘고 못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