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분은 전달된다. 최근 나는 사람 본연의 에너지, 시선 등이 포함하는 '느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느낌은 그 사람 본연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는가? 당연히 느낌은 그 사람을 평가하기에 부족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만 존중과 애정은 사람 사이에서 공명하는건 분명하다. 좋은 기분 또한 그렇다.
나는 효율, 효과, 명확함의 이름으로 성장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음'을 선물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읽으며, 오히려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기분은 씨앗과 같습니다. 가게가 내뿜는 좋은 기분은 반드시 사람들과 사회로 퍼져나가고, 사람들과 사회의 좋은 기분도 반드시 가게로 돌아옵니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나는 '좋은 기분을 나누는 그런 관계'를 놓치고 살지 않았나 싶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에서 말이다. 나무는 사계절을 지내며 죽은 세포마져 나이테로 품는다. 나무는 천천히 그리고 평생을 조금씩 자란다. 식물의 생장은 이러하다. 좋은 기분을 나누는 관계, 나의 생장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갈무리
- 좋은 기분은 씨앗과 같습니다. 가게가 내뿜는 좋은 기분은 반드시 사람들과 사회로 퍼져나가고, 사람들과 사회의 좋은 기분도 반드시 가게로 돌아옵니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 지금도 많은 업장에서는 손님과 직접 마주하는 접객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여깁니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만들고 팔아야 할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나머지 친절을 접객하는 사람의 역량으로 온전히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가치관과 의식의 공유 없이, 업장의 친절도를 엊그제 급하게 구한 직원 개인의 삶에 지나치게 의탁할 경우 중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손님에게 친절에 대한 선명하고 일관된 인상을 줄 수 없을뿐더러 자기 시간의 소중한 일부를 할애하는 직원도 배우는 것 하나 없이 소모적인 하루를 보내기 쉽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전반에는 접객 일을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때우거나 경력 쌓기와는 무관한, 잠시 스쳐가는 일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아쉬움과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이 지금보다 적었던 과거에는 오히려 제품을 건네주는 사람의 역할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 당신의 삶이 이 제품으로 얼마나 윤택해질지 납득시키려면 누군가가 친절히 설명해줘야 했기 때문일 겁니다.
- 직장인 시절,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임도 불편해지고, 생각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할 테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저를 집어삼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욕심으로는 죽는 순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을 넘어 접객업 전반, 나아가 우리 사회의 활동, 즉 모든 인간사人間事가 결국 기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기쁨, 안온함, 따스함, 편안함, 만족감 등의 ‘좋은 기분’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의미로든 복잡한 맥락이든 최종적으로 우리는 더 나아진 기분 상태를 추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을 만족시키는 방법도 꽤 간단합니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더 좋은 기분이 들면 됩니다.
- 요즘엔 돈과 물건이 무미건조하게 오가기 십상입니다.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조차 무언가를 사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거래에서 발생하는 교감의 중요성을 상실했는데 그 자리에 반드시 인간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겠죠. 접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으니 인간을 기계로 대체해도 된다는, 조금 씁쓸하지만 시대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옵션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의 암묵적 합의하에 생긴 겁니다.
- 키오스크가 무조건 옳은 방향이라거나, 앞으로 접객의 대부분을 이 표정 없는 모니터가 담당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것을 생생한 경험을 통해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요즘 대두되는 디지털 소외 계층인 노령 인구에 대한 차별 문제, 그러니까 ‘키오스크는 이해하거나 다루기가 어렵다’라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교감의 상실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제가 이야기하려는 문제의 핵심입니다.
-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많은 분이 이 가이드의 내용에 공감한다고 연락을 주신 겁니다. 덧붙여 책자로 소장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관심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찾아온 ‘태도의 위기’에 공감한다는 신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