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입문책
이종태, 『금융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를 읽고
이 책은 주주자본주의, 국채, 경제 개방, 외국 자본, 부동산 문제, 인프라의 금융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책을 읽는 내내 반복해서 떠오른 질문이 있다. “왜 나라는 국채를 만들어야만 할까? 화폐를 그냥 찍어낼 수는 없을까?”
책은 이에 대한 정면 답변을 주진 않지만, 국채가 단순한 ‘국가의 빚’이 아니라 시장과의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계약 행위임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암시한다. 화폐를 무작정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국채는 이러한 부작용을 피하면서도 필요한 재정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국가는 자금을 시장에서 ‘빌리는’ 방식으로 자산 운용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금융시장 참여자들과 신용 기반의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구조는 미국의 금융 전략을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미국은 세계 각국이 자발적으로 사주는 국채를 통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와 군사, 기술 패권을 유지한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 작동하며, 미국은 자국 통화로 빚을 내고도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반면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며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 중이다. 자국 중심의 금융 인프라를 확장하고, 디지털 위안화 등 새로운 통화 실험을 통해 통화 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금융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핵심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책 속 지하철 9호선의 사례처럼, 공공재가 민영화되거나 금융화되는 흐름을 보면 국가는 자금을 직접 조달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 금융시장에 의존할 것인지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국채는 그런 선택의 중심에 있다. 결국 국가조차도 하나의 금융 주체로서 움직이며, 자본시장의 논리에 따라 운영된다. 이 책은 그런 세상의 구조를 찬찬히 보여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가령 1년에 1억을 벌어다 주는 기업이 10억이라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은행이자가 연 50%여서 10억을 예금하면 1년에 5억을 벌 수 있다면, 대부분은 예금을 택할 것이다. “1년 동안 기업의 수익”과 “예금으로 인한 이자 수익”은 얼추 같아야 세상 이치에 맞다는 것을 이 책은 쉽게 설명한다. 세상은 언제나 ‘기대 수익’과 ‘리스크’를 재는 곳이다.
책의 내용들은 내 주변의 삶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었다가, 다시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하철 9호선이 과거 민간 기업이 운영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회 인프라의 금융화가 이미 미국에서는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는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익숙하던 도시의 철도 하나가 다시 낯설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 경제위기가 덮친 지금, 미국 연준(FRB)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유동성의 공급은 곧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채 발행의 뒷받침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 회사 동료는 주식과 국채를 반반씩 나눠 들고 있어 폭락하는 주식시장에서도 자산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금융은 그만큼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전 지구적 체계에게도, 생존의 기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