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5

걸으면서 한 생각들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산티아고에서 한 생각들

어떻게 쉴까 고민하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평소에도 산책과 등산을 좋아해서 순례길이 기대되었다. 낯선 곳에서 길게 걷다 보니 평소 생각도 더러 정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하며 새롭고 낯선 것을 경험하며 다양한 생각을 남긴다.

공허함과 정체성, 자의식 과잉

최근 들어 공허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어야 된다"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이런 생각들은 나를 지탱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갉아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일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학교에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 나는 지각을 할 바에는 차라리 학교에 안가겠다고 때를 썼다. 아마도 '지각하는 사람'으로 보여지기 싫었던 것이다. 1시간도 늦지 않았는데, 엄마에 손에 질질 끌려 학교로 향한 기억이 있다. 지각해도 괜찮다라는 것을 배우기에는 내가 어리거나 사회가 가혹한 것일까? 나의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이렇게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정체성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것을 붙잡고 불안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이에는 들어가면서부터 시험과 등수, 우열반 등의 입시 경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해내는 사람', '똑똑한 사람',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심취했고, 이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은 등수로 확인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입시에 끝에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면서 그 정체성이 작동한다고 믿었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노력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패러다임이 내 몸에 새겨졌다. 20대에 이르러 나의 정체성은 더욱 비대해진다.

30대가 되어 “대학교 입시만큼 그나마 정직하고 단순한 성취가 없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하는 어른이 된다. 단순한 열정적인 정체성만으로 이 삶을 헤쳐나가기에는 세상이 복잡하고 어렵다. 이 과정에서 내 안에 없는 정체성을 정의하고, 분열하고, 공허함을 반복한다. 부서진다. ‘나는 도전하는 사람인데…’, ‘나중에는 꼭 이런 걸 해야지’, ‘다이어트 해야지’ 등 행동하지 않을 무언가만 되새김질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불안은 나를 관념으로 여러개의 정체성으로 분리하고 상상하는 것으로 부터 온다. 내 안에 가짜와 진짜 같은건 없고 나는 나일 뿐인데, 내 안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렇게 생각으로 규정하는 '내'가 진실이 아닐까봐 불안해 한다.

정체성도 실질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무언가의 실체가 없다면 그저 분열된 자아를 만들고 공허하게 할 뿐이다. 자의식 과잉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자.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임을 설명하고 다짐하기 보다는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자.

P 에서 J 로

나의 MBTI 는 ENTP 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나의 P 대신 J가 나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P 보다는 J 에 가까워 지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삶이 점점 J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조금이나마 느꼈다.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빠져 봐야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마드리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레온 이라는 도시에서 순례길을 시작하고자 했다. 오후 6시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레온으로 가는 마지막 차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역으로 가야 했다. 우선 7시 30분정도가 마지막 차였는데, 1시간 30분정도면 거뜬하게 도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티켓 발권기는 매우 매우 불친절 했고, 발권기 외에 번호표를 뽑아 발권하는 것은 대기줄이 매우 길어 제시간 내에 표를 뽑기 어려웠다. 낯선 곳에서, 다소 한국에 비해 불편한 시스템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12시간 이상 장시간 비행을 한 나는 진이 빠져있었다. 이 와중에 버스를 거꾸로 타기도 했고,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매우 불안해 하기도 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중간에 겨우겨우 버거킹을 찾아 베터리를 충전했다. 이렇게 첫날 부터 노숙 혹은 마드리드에서 하루를 보내며 여행을 시작하나 싶은 생각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리 찾아보고 준비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나를 탓하며 힘들어 했다. 이 첫날의 경험은 나의 여행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며칠 후의 일을 세세하게 상상하며 계획하는 사람으로 바꿨다.

여행을 하며 나의 MBTI가 P 에서 J 로 변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래 나는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니 J 가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은 체력이 부족해 J 가 된 것이다. 결국 P 를 얻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J 로 시작해 P 가 되어 현실을 마주할 테니까.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는 스페인어의 부엔 (buen: 좋은)과 까미노 (camino: 길)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주고 받는 인사다. 며칠 걷다 보면 “부엔 까미노”가 입에 붙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이다. 적어도 한국인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가볍게 인사를 건네기 어려워 한다. 나 또한 그런 매우 사람이다. 에어팟을 끼고 과묵하게 걸었다.

순례길 초반에는 하루 종일 걸어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은 새벽에 걸었고 나는 오후에 느긋하게 걸어서 그랬다. ) 걷다 보면 금방 심심했다. 어느날에는 1,2 시간 만에 사람을 처음 보면 인사가 절로 나왔다. 오후에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걷다 보면 숨이 턱턱 막혀왔는데, 인사는 힘이 되었다. 이런 응원의 인사를 금방 익숙해졌다.

새삼스럽게 가벼운 인사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심지어 사람이 많을 때에도 인사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남에는 대화가 필요하고, 대호에는 인사가 필요한데 나는 그 인사부터 하지 않으니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조차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출발했으나, 여행 전 상상만큼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여행 중 만난 어떤 이들로 인해 나의 여행 계획이 바뀌기도 하고, 그날의 점심 메뉴가 바뀌기도 한다. 인사는 대화로 이어지고, 대화는 인연이 되고, 인연은 많은 것을 바꾼다. 인사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흔한 말이지만, 평소에도 인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길 위에 사람들이 많아진다. 순례길은 중간 지점부터 출발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적지에서 100km 떨어진 사리아(Sarria)부터는 숙소 예약이 힘들다. 체력도 떨어지고, 포르투로 넘어가는 일정도 있어 나도 숙소 예약을 열심히 해야만 했다. 보통 당일에도 예약이 가능했지만, 1-2일 전에 예약을 해야만 했다. 20km씩 걸어갔는데 숙소가 없어서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 예약이 곧 걷는 거리와 시간이 된다. 남은 거리를 남은 기간 내에 어떻게 걸을지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막 걸어온 길이 무난하거나 아침이 상쾌할 때는 조금 더 걷고 싶은 마음에 공격적으로 걷는 일정을 짜게 된다. 반대로 오후의 무더위에 지친 뒤에는 몸살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온갖 피곤함에 계획을 다시 수정한다. 2-3km만 더 걸으면 되지만 너무 피곤해서 와츠앱으로 택시를 불러 타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시로 체력에 따라 계획이 요동치는 게 정말 웃겼다. 수일간 빈번한 계획 수정을 반복했다. 이건 뭐 계획이 아니라 대처의 영역인가.

zumo de naranja

한국에서는 혈당 스파이크 걱정에 과일음료를 잘 마시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예외다. 고된 걷기 덕분에 오렌지 주스를 물처럼 마셨다. 영어로도 주문이 가능하지만, 오렌지 주스만큼은 스페인어로 정확하게 주문하곤 했다. zumo de naranja(수모 데 나랑하). 오렌지 주스. 너의 스페인 이름을 외웠다.

사람과 세계를 이해할 때 언어를 통할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는 언어를 통해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 할 뿐이다. 완벽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 그럼에도 언어는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최선이자 몇 없는 도구이다 . 애틋한 지점이 있다. 어떤 사물이나 행위에 이름을 붙이면서 더 잘 생각하고, 이해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하루에도 여러개의 마을을 지난다. 근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마을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고 나면 마을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는지도 이야기하기 어려워진다. 마을 이름을 호기심있고 애정있게 기억하고, 그 특색을 머리속에 차곡차곡 박아두지 않으면 머리속에서 금방 없어지거나 다른 기억과 뒤섞여 음미할 수 없다.

비슷하게 길위에서 듣고 싶은 음악 이름이 기억이 안나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노래의 리듬은 생각나는데 가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앨범 커버만 어렴풋이 기억나서 한참을 구글링하다 찾지 못했고, 결국 스트리밍 앱에 기록들을 뒤져 찾았다. 바로 Roland Faunte. 이제 그 가수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한 번이라도 더 쳐보고, 살펴보겠다. 문득 이렇게 이름과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없이는 아무 생각도, 표현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한국어도 어려워하는 내가, 외국어를 하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많을지 갑자기 아득해졌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얼마나 좁을지 두렵기까지 하다. 언어를 통해 내 안의 세계를 확장하고 여행해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길위에서 했다.

걱정이 짐이 될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 나는 이미 유튜브로 여러 순례자들의 후기를 보았다. 챙겨야 할 것들이 계속 늘어났다. 예를들어 선배들은 공통적으로 비에 대한 대처를 언급했다. 순례길에는 30~40L 백팩을 가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에코백을 들고 걷는 미니멀리스트조차도 우산만큼은 챙겼다. "그렇지, 비에 양말까지 젖어서 걸으면 정말 힘들겠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고, 신발이 안 마르면 어쩌지..." 대단히 공감했다. 우산을 시작으로 경량 패딩, 무릎 보호대 등 가져가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15L 작은 가방에 짐을 쌌다. 미니멀리즘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짐을 싸봐도 쉽지 않았다. 꼭 가져가야할 침낭을 사서 넣은 순간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30~40L 배낭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40L 짜리 배낭을 이번 여행 말고 어디에 쓰겠는가. 집도 좁아서 놓을 곳이 없다. 고심 끝에 22L짜리 아크테릭스 가방을 샀다. 무려 아크테릭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가방이다. 가방까지 비싸게 주고 샀으니 22L 안에 모든 짐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22L 백팩에 짐을 싸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경량 패딩을 포기해야 했다. 스패츠(발목 덮개로, 비가 신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물건) 같은 물품은 사치였다. 스패츠뿐만 아니라 우산도 넣기 힘들었다. 바디 워시는 샴푸로 대체할 지, 양말은 몇개를 가져가야 할지 등 물건 하나하나를 두고 고민을 해야 했다. 어찌 저찌 22L 새로산 "아크테릭스" 가방에 짐을 쌌다.

순례길 위에 다른 사람들의 배낭과 물건을 보며 놀라워 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짐을 보며 미니멀리스트가 된 느낌을 만끽했다. 나보다 짐이 적은 사람은 순례길에서 찾기 어려웠다. 물론 속옷 없이 반바지를 입거나, 맨몸 위에 바람막이를 걸치거나, 젖은 신발로 순례길을 걷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렇게 불편함과 맞바꾼 나의 짐조차도 길 위에서는 점점 무거운 짐이었다. 물건이 있어서 혹은 없어서 힘들 때마다 나는 짐에 대해 생각했다. 가져오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가져왔어야 하는 것, 버려야 할 것 등을 생각한다. "손수건이 있으니 타월을 버려야 하나?" "목이 마른데 물을 안 챙겨왔네. 다음 마을이 언제 나오지?" 따위의 고민들이다.

목이 마르면 참으면 된다.(3시간 내에는 무조건 마을이 나온다.) 비가 오면 맞으면 된다. 걱정들은 짐이 되어 내 길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더 잘하기 위해 했던 걱정들이 역설적으로 더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걱정은 짐이 된다.

all or nothing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한국인들은 순례길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이다. 이해가 된다. 한국인은 무언가에 대해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을 여전히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문제는 이런 생각이 극단적으로 커질 때다. 금메달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태도나 우울함이 문제다.

나의 산티아고 도착도 그러했다. 그 끝에는 묘한 아쉬움과 허탈함뿐이었다. 걸어왔던 아름다운 풍경을 뿌듯해 하기 보다는, 걷지 못해 버스나 택시를 타며 스스로 타협한 날들이 떠올랐다. "그 때 걸었다면 더 의미있는 길이었을까?" 따위의 생각들이 지나갔다. 놀랍게도 그 타협한 날들이 애초에 계획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쉬워 했다는 점이다. 타협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마드리드 공항으로 들어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에서 출발해야 했고, 2주 휴가 내에 모든 구간을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몇몇 구간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건너뛰기로 계획했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기계적인 비교에서 오는 불행함이다. 누구는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800km를 걸어와 축제 같은 도착을 맞이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아쉬워 했다. "all or nothing," 즉 전부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공격적인 집착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남들과의 비교와 과정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극적으로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어떤것을 세심하게 애정어리게 살피지 못하기에 all or nothing 을 외치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고. 다시 한번 온다. 800km 풀코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

행복해지려면 행복하면 된다. 여행 중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서양 사람들의 유머와 너스레가 인상적이었다. 와이너리 투어 가이드가 이 농장의 가장 비싼 와인이 얼마일 것 같냐고 묻자, "맛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포르투에서 파두라는 전통 공연을 보며 주변을 둘러보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소 과장된 표현인건지 그 안에 마음이 그러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가.

알베르게(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느 날 10명 정도가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중에는 미국인과 유럽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한 독일인이 눈에 띄었는데, 미국 횡단 여행을 꿈꾸며 농담을 주고받는 그의 모습이 유쾌했다. 여행이라는 상황에서 느슨함과 여유가 있었겠지만, 그들은 일상에서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행복한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 같다. 무엇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느끼고 즐길 줄 아는 태도와 위트에서 행복이 생겨나는 듯하다.

걸어가면 되지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포르투로 이동해 며칠 동안 쉬며 여행을 즐겼다. 순례길 덕분에 걷는 것이 익숙해져, 포르투에서도 대부분 걸어서 다녔다. 빠르고 편한 대중교통을 두고도, 느리고 힘들더라도 발길을 직접 옮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여행에서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걷다 보니, 평소 내 일상에서 얼마나 걷기가 부족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자동차나 지하철 같은 바퀴 달린 수단으로 이동하고, 도착 시간을 분 단위로 계산하며 효율성만을 중시했다. 예를 들어, 10시까지 회사에 가야 한다면 9시 5분에 나와 버스를 타는 식이다.

하지만 여행 중 걷기로만 이동하다 보니 많은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대중교통을 잘못 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는 일도 작은 모험이 되었다. 길은 결국 다 이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소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고행을 통해 강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걸어가면 되지”라는 마음가짐 덕분에 여행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새로운 시각으로 도시를 둘러보게 되었다.

포르투의 숙소에서 도루강까지는 약 20분 거리였기에 당연히 매일같이 여러번 걸어서 다녔다. 포르투에서 마지막 저녁 날, 낮잠을 자다 도루강의 일몰을 놓칠까 전철을 탔다. 그 빠름에 새삼 놀랐다. 효율성에 쫓기던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지친 몸을 빠르게 나르기 위해 전철에 몸을 싣는" 그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어색한 서울

익숙해진 일상이 어색해진다. 이것은 장점이다.

집에 들어올 때 부터 나의 방의 냄새부터 어색했다. 별로 좋지 않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 했고, 청소를 더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긴 여행을 20L 도 안되는 배낭을 매고 해봤다. 생각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한강도 매우 이뻤다. 이런 일상을 아름답게 보지 못했을까.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어색한 시선 자체가 많은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