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짐이 될 때
산티아고 순례길 짐을 싸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유튜브로 여러 순례자들의 후기를 봤다. 준비물이 계속 늘어났다. 순례길에는 30~40L 백팩을 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많게 느껴졌다. 에코백만 들고 걷는 사람도 우산은 챙겼다. 나도 축축한 신발로 걷기는 싫었다. 우산을 시작으로 경량 패딩, 무릎 보호대 등 짐이 하나둘 늘었다.
나름 미니멀리즘을 지향해보고자 했다. 15L짜리 작은 가방에 짐을 싸려고 시도했다. 쉽지 않았다. 침낭을 넣는 순간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30~40L 배낭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 말고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여행 이후에도 쓸 수 있는 22L짜리 아크테릭스 가방을 샀다. 평소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가방이다. 이제 새로산 가방 하나에 짐을 싸야 했다. 과정에서 경량 패딩은 포기했다. 비를 위한 장비들은 사치였다. 바디워시는 샴푸로 대체할 수 있을지, 양말은 몇 켤레가 적당할지 극단적인 고민이 이어졌다. 어찌저찌 새 가방에 짐을 다 쌌다.
순례길을 걷다 보니 나보다 짐이 적은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스스로 미니멀리스트가 된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배낭을 보며 놀랐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으로 저 짐을 들고 왔을까. 적은 짐이 능사는 아니었다. 불편함이 있었다. 속옷 없이 반바지를 입거나, 맨몸 위에 바람막이만 걸치거나, 젖은 신발로 걷는 날도 있었다. 가다 멈추고 시냇물에 빨래를 하고 옷을 말리기도 했다.
산티아고에서는 나의 걱정이 곧바로 가방의 무게가 된다. 물건이 있어서 혹은 없어서 힘들 때마다 짐에 대해 생각했다. 가져오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가져왔어야 하는 것, 이제는 버려야 할 것들을 말이다. 점점 극단적으로 걱정을 내려놨다. 물도 무거워 챙기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목이 마르면 참고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면 되니까. 비가 오면 맞으면 된다. 젖은 옷과 신발로도 걸을 수 있다. 말리면 된다. 걱정을 더니 짐이 덜어졌고, 몸이 가벼워 걷기 수월했다.
잘 하려고 하는 걱정이 오히려 짐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