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에서 J 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간다. 인천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15시간 비행기를 탔다. 레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순례길을 시작할 예정이다. 마드리드에서 고속철도로 3시간 즈음 있는 도시다. 레온에서 산티아고 성당까지는 걸어서 15일 정도가 소요된다.
오후 6시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없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7시 30분에 출발하는 레온행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야 한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공항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공항에서 기차역까지는 쉽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큰 착오였다.
공항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스페인 지하철은 우리나라 보다 복잡했다. 환승도 많이 했어야 했다. 특히 발권이 쉽지 않았다. 중간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금방 버스를 잡아 탔다. 버스 안에서 숨 고르고 안에서 지도를 켰다. 버스를 거꾸로 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퇴근길 강남 같았다. 7시 30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어 꺼지기 직전이었다. 기차역까지 어떻게 갈지 이미지를 캡처를 시작했다.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변경했다. 어찌어찌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차역 안은 매우 복잡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이 꺼졌다. 겨우겨우 버거킹을 찾아 배터리를 충전했다. 버거킹에서 콜라 하나 시켰다. 크게 한 모금 마셨더니 위가 확 놀라 배가 쓰렸다. 장시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다가 공복상태였기 때문에 속이 놀란 것이다.
버거킹에서 배터리를 충전하고 나서 내가 타야 할 고속철 승강장을 20분 남겨두고 겨우 도착했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권 기계로 표를 끊기가 어려웠다. 발권기에 비친 스페인어에 구글번역기 카메라를 비췄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티켓을 사기 위해 창구에 갔다. 번호표를 뽑았으나 수십 명의 대기자가 있었다. 이렇게 마드리드에서 하루 자고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발권기로 다시 돌아가 눌러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눌러보았다. 5번 이상의 도전 끝에 10여분을 남기고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표를 들고 부랴부랴 뛰었다. 뛰다 보니 공항처럼 짐검사를 해야 했다. 줄을 서야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결국 간신히 승강장에 도착하여 고속철을 탔다.
출발 전에는 계획이 없는 여행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유를 갖고 하나하나 모험하는 여행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의 MBTI는 ENTP이다. 살면서 점점 P에서 J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데, 이번 여행에서 더더 느꼈다. P는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덧) 이날의 경험은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디를 갈 때 그곳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미리 걱정하고 준비했다.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순례자 숙소가 다 차면 어쩌지?" 하는 걱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