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글이 무엇인지 읽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쓴 글을 꺼내 고쳐 썼는데 꽤나 재밌다. 내 문장은 그렇게나 이상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갈무리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적, -의, 것, -들은 문장 안에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 사회적 현상 → 사회 현상
- 문제의 해결 → 문제 해결
- 사과나무들에 사과들이 열였다. →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다.
-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 →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 사랑이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보조해 줄 낱말을 덧붙일 때는 당연히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효과를 봐야 한다. "있는, 있다" 반드시 제거해야할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빼는 것이 낫다.
- 멸치는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다. → 멸치는 바싹 마른 상태였다.
- 눈으로 덮여 있는 마을 → 눈으로 덮인 마을
-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 길 끝으로 작은 숲이 이어졌다.
- 회원들로부터 날짜를 당기라는 요청이 있었다. → 회원들이 날짜를 당기라고 요청했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지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적으로 '보이는' 문장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지만 사실은 게으름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 그 문제에 대해 나도 책임이 있다. → 그 문제에 나도 책임이 있다.
-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를 느낀다. → 서로 깊은 신뢰를 느낀다.
-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 그녀는 전형적인 독일 여자였다.
- 화가는 자신의 작품들 중 하나에서 누군가 덧칠한 흔적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 화가는 자신의 그림 한 점에 누군가 덧칠한 흔적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 시스템 고장에 의한 동작 오류로 인해 발생한 사고 → 시스템 고장에 따른 오동작 때문에 발생한 사고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에'와 '-으로'는 혼동해 써서는 안 되는 조사다.
- 이번 추석엔 고향으로 갈 수 없다. → 이번 추석엔 고향에 갈 수 없다.
- 앞에 가야지 뒤에 가면 어떡해! → 앞으로 가야지 뒤로 가면 어떡해!
'-에'와 '-을'또한 가려 써야 하는 조사들이다.
- 자식이 명문대를 가는 게 꿈인 부모들 → 자식이 명문대에 가는 게 꿈인 부모들.
'-에게로' 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다.
- 낯선 세계로의 진입이 시작되었다 → 낯선 세계로 진입이 시작되었다.
'-에'와 '-에게', '-에게서'를 구분해 쓰는 것도 중요하다
- 적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다 → 적국에 선전 포고를 하다
조사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으)로부터'이다. '-로는'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인 반면 '-부터'는 출발점을 뜻하는 조사다. '-로부터'라고 쓰면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셈이다.
-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 지난번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 지난번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 구멍으로부터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가 도망쳤다. → 구멍을 통해 교도소 밖으로 빠져나갔다.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뭘 시켜 줄 수 있을까?" '–시키다'를 붙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조 동사 '주다'까지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가령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라고 할 때처럼. 하지만 '시켜 주다'는 '내가 나가는 길에 짜장면 시켜 줄게'라고 말하거나 '그래서 감독이 너를 주인공 시켜 준다고 하던?'이라고 말할 때 말고는 쓸 일이 없다. 말하자면 '시키다'가 본동사로 쓰일 때 말고는 '–시키다'에 '주다'를 붙일 일은 없다는 얘기다.
- 소개시켜 주다 → 소개해 주다.
- 주목시켜 주다. → 주목시키다
- 연결시켜 주다 → 연결해 주다.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자리에 '–ㄹ 수 있다'를 붙인 경우다.
-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 거야? → 1등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 거야?
-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한다. →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될 능력을 갖추고자 한다.
- 그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 그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그, 이, 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지시 대명사는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 젊은 날 아버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실수가 아버지 인생을 이렇게 어둡게 만들었다. 이러한 어두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이 같은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아버지 인생의 이 어두움이 결국 내 인생을 결정짓고 말았다. → 젊은 날 아버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버지 인생을 어둡게 만든 실수였다. 어두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아버지 인생에 드리워진 어두움이 결국 내 인생을 결정짓고 말았다.
그 어느, 그 어떤, 그 누구, 그 무엇
-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 그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문장 다듬기
우리말의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뿐이어서 한 문장에 과거형을 여러 번 쓰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문장도 난삽해 보인다. 게다가 관형형은 다음의 수정된 예문들처럼 과거형보다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 가며 공부를 했어야 했다' → '내가 어렸을 때는 좁은 교실에서 난로를 피워 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
- 배웠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 배운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복습이다.
- 자책에 빠져 지냈던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 자책에 빠져 지낸 몇 해 동안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 어린 시절 외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는가 '–는가'는 "현재의 사실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다. 그러니 다음 문장들에 쓰인 '는가'는 어색하다.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막연한 의문이 있는 채로 그것을 뒤 절의 사실이나 판단과 관련시키는 데 쓰는 연결 어미"는 '–는가'가 아니라 '–는지'이다.
- 자신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눈여겨보았다. → 자신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눈여겨보았다.
- 나는 그의 열정이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자 했는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 나는 그의 열정이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자 했는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나는……'이라고 쓰는 순간 글을 쓰는 '나'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셈이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형에게 이름도 지어 주고 옷도 입혀 주고 집도 지어 주는 것처럼 내가 쓰는 문장의 주인에게 나 또한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성격도 부여해 주고 할 일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온전하게 펼쳐지는 글을 쓸 수 있다.
- 주사위 두 개짜리 확률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이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10퍼센트밖에 없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가운데 주사위 두 개짜리 확률 문제를 풀 수 있는 학생은 놀랍게도 10퍼센트밖에 안 된다. '주사위 두 개짜리 확률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등학생이 (10퍼센트밖에) 없다'가 이 문장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갈 수 있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