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8

알몸과 누드

류대성, 『사적인 글쓰기』를 읽고

최인아 책방에 간다. 조용하고, 무엇보다 책을 제안해줘서 좋다. 평소에 읽지 않을 책을 고른다. 그런 책들은 끝까지 읽지 않을 확률이 확실히 높다. 그러나 이런 도전 끝에 좋은 책을 기분 좋게 읽으면 더욱 기분이 좋다. 이 책도 그랬다. 얼핏 읽지 않을 책 같았는데, 읽고 나서는 매우 좋았다.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 피었다. 김훈은 '이'와 '은'을 두고 일주일을 고민했다고 한다. 글쓰기는 이렇게 조사 하나만으로도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글 쓰는 4가지 동기를 제시한다. 주목 받고 싶은 이기심,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열정, 진실을 보존하려는 역사적 충동,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 나도 글을 쓰고 싶다. 잘. 사실을 넘어 진실을 쓰고 싶다.

사적인 글쓰기는 영혼의 누드화라고 한다. 글쓰기는 누구나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 자아를 드러내고 당당하게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알몸(naked)과 누드(nude)는 다르다. 당당히 드러내면서 감추는 글은 알몸보다 누드에 가깝다. 당당한 누드 같은 글쓰기를 해보자. 사적인 경험을 확대하고, 보편적인 공감의 글을 쓰자.

갈무리

  • 취향을 두고 논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가슴을 움직이는 글은 대체로 문학에 가깝다.
  • 사실 첫 문장은 두 번째 문장을 읽게 하려는 목적이 전부다. 두 번째 문장이 세 번째 문장으로 자연스레 이끌어 준다면 좋은 글이 된다.
  • 감동적인 표현과 기막힌 문장이 좋은 글의 판단 기준은 아니다. 새롭고 신선한 당신만의 생각을 담아낸 글이면 충분하다. 창조적 상상력이 없는 화가의 손기술은 얼마나 비참한가
  • 사적 경험을 확대하고 일반화하는 방법은 글을 시작하는 최고의 기술 중 하나다.
  • 감동적 표현과 기막힌 문장은 엊기로 쓸 수 없다. 글쓰기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수러운 결과물이다.
  • 형태를 뭉갠다고 누구나 에드바르 뭉크가 될 수 없고 캔버스에 물감통을 집어 던진다고 누구나 잭슨 폴록이 될 수도 없다.
  •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은 오프사이드를 무시한 채 축구 경기를 하는 선수와 같다.
  • '죽지 않는 이유' 보다는 '살아가는 이유'
  • 글쓰기는 일상적 대화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명료해야 한다. 말하기에 포함된 비언어/반언어적 요소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 당신의 글을 문단별로 요약하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면, 읽는 사람 또한 그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대부분의 글은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절반을 줄일 수 있다.
  • 요약은 단순히 분량을 덜어 내고 크기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응축하는 연습이다.
  • 사적인 글쓰기가 '폐쇄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을 위한 도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신념이 강한 사람,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 윤리적 기준이 철저한 사람, 종교적 도그마에 빠진 사람의 글은 그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위험성을 내포한다.